‘더불어-미래당’의 진흙탕 개싸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됨으로써 21대 총선은 처음으로 연동형 방식으로 치러지게 됐다. 하지만 이 선거제도는 벌써 만신창이가 되었다. 선거제도 개혁을 결사반대했던 미래통합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 합세하여 위성정당 꼼수를 쓰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파투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의 개혁 취지는 간명했다. 비례성(유권자의 표가 실제 의석으로 반영되는 정도)을 높이자는 것이다. 기존의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이 정당지지율보다 월등히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과다대표’) 반면에 소수 정당은 정당지지율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가져가는(‘과소대표’) 불합리한 제도이다. 그래서 정당지지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이다.
2018년 지방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서울특별시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는 더불어민주당 50.92%, 자유한국당 25.24%, 바른미래당 11.48%, 정의당 9.69%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의원 총 110석의 당선자수는 더불어민주당 102명(92.73%), 자유한국당 6명(5.45%), 바른미래당 1명(0.09%), 정의당 1명(0.09%)이었다. 부산광역시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는 더불어민주당 48.81%, 자유한국당 36.73%, 바른미래당 6.73%, 정의당 6.44%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부산시의원 총 47석의 당선자수는 더불어민주당 41명(87.23%), 자유한국당 6명(12.77%)이었다. 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이 심각하게 어긋나고 있음이 확인된다. 대구·경북과 호남 지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16년 4월에 시행된 20대 국회의원 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이 새누리당 33.50%, 더불어민주당 25.54%, 국민의당 26.74%, 정의당 7.23% 등이었다. 만일 정당지지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한다면, 새누리당 100석, 더불어민주당 77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으로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의석수 분포는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이었다. 거대 정당의 과대대표와 소수 정당의 과소대표 양상이 너무나 심각하다.
유권자에게 선거제도란 투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규칙이다. 그런데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면 ‘사표’(死票)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유권자의 표가 의석에 반영되지 않은 사표는 선거 때마다 50% 전후에 달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전체 지역구 선거 1등 당선자들이 얻은 표는 총 1,176만979표(48.28%)였고, 의석에 반영되지 않은 사표는 1,225만8430표(50.32%)로 집계된다. 이처럼 사표가 많이 생기니 갈수록 투표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1988년 13대 75.8%에서 2008년 18대 46.1%로, 20년 만에 무려 30% 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뒤베르제의 법칙’은 ‘단순다수대표제가 양당제를 가져오고, 비례대표제가 다당제를 가져온다’는 정치학 이론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1917~2014년)가 주창한 이론으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와 1등만이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가 결합되면 양당제가 된다는 학설이다.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인 나라이고, 우리나라도 지역구 국회의원을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한다. 국회의원 84%(총 300명 국회의원 중 지역구 의원 253명)를 이 선거제도로 선출하므로 양당제가 고착돼 있다.
2016년 촛불항쟁을 통해 분출된 광장의 민심은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했고 그것이 결국 지난 연말 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요했기에 마지못해 선거법 개정에 나섰고, ‘4+1’ 협의체를 만들어 선거법·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동시에 추진했다. 패스트트랙 당시 설정한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은 250 대 50, 253 대 47로 계속 후퇴했다. 결국 비례대표는 1석도 늘리지 못했고, 50% 연동율도 30석까지만 적용되고, 나머지 17석은 현행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민주당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 탓이다.
의석을 전혀 늘리지 않고, 50%만 연동형을 적용하며, 게다가 30석 상한선까지 ‘캡’을 씌우고 나니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삼중의 자물쇠가 채워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해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이 애초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 시행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선거 국면이 시작되자 미래통합당은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정당을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뒤집고 더불어시민당 창당에 착수하였다. 이로써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가 사라지고 말았다. 21대 총선의 비례대표 선거는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과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미래당’의 양당제가 부활하는 셈이다. 양당제는 두 개의 지배적인 정당이 정치를 좌우하는 정당체제를 말한다. 이기면 집권당, 져도 제1야당을 차지하여 거대 양당이 국회를 지배함으로써 입법 권력을 독점하는 폐단이 고질적이다. 그러므로 21대 총선이 양당제 구도로 퇴행하면 선거제도 개혁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촛불항쟁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최악과 차악의 ‘적대적 공존’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의 제1당 등극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저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 더불어시민당 창당을 합리화한다. 명분 없는 위성정당 창당을 ‘공포 마케팅’으로 은폐하려는 정치 술수이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제1당을 미래통합당에 내줄 거라고? 오히려 반대의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중도층의 59.1%는 위성정당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고, 25.9%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도 반대 48.1%, 찬성 40.9%였다. (한국일보 의뢰,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위성정당 창당이 제 발등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20대 총선에서 3% 미만의 경합지역은 38석이었으며, 5%로 확대하면 60석이 넘는다.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한 60%의 중도층은 지역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거나 아예 기권할 가능성이 크다. 비례대표 의원 더 챙기겠다고 욕심 부리다가 중도층과 지지층의 일부가 흔들리면 결과는 소탐대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 꼼수를 부리고서도 수도권과 강원·충청, 부산·울산·경남의 경합지역에서 이기리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만과 착각이다.
더불어민주당에게 최선의 선택이 없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안 내면 된다. 위성정당 꼼수를 쓰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을 과감하게 양보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에서 양보한 자리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지역구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의 경합지역에서 압승하여 제1당의 지위를 확고하게 차지할 거고, 진보정당들도 보다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민주와 진보가 상생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한국 정치의 과제는 거대 양당의 과점체제에 균열을 내고 다당제 정당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당독재의 후계자인 미래통합당이 다당제 전환에 결사반대하는 것이야 익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 꼼수로 비례대표 의석을 탐하는 것은 ‘99마지기 땅을 가진 지주가 1마지기 가진 가난한 농민 땅을 뺏어서 100마지기 채우려는 것’과 같다. 염치없고 뻔뻔하다.
비례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21대 총선은 ‘더불어-미래당’의 위성정당 꼼수 경쟁으로 오히려 선거제도 개혁 이전보다 더 나빠질 우려가 커졌다. 정책 경쟁은 실종되고 위성정당 대결의 선거공학만 난무하는 진흙탕 개싸움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정치의 퇴행이다. (2020년 3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