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인간 안보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잔인한 4월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다. 미국이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 수 2만명을 넘어서며(20,608명) 세계 최다 희생국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108,867명) 가운데 5분의 1을 차지하는데, 향후 코로나19로 최소 1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의 미군 사망자가 33,686명,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가 58,220명이었음을 상기하면 끔찍한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의 충격은 인명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경제에도 전대미문의 타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보다 더 심한 경제침체가 예상되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이 확실”하다면서 “올해 170개국 이상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국제통화기금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국가는 85국으로, 2008년 금융 위기의 두 배에 달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고용 위기다. 고용 위기는 민생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2분기 세계 총노동시간이 전 분기 대비 6.7%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것은 주 48시간 상근직 일자리 1억9,500만 개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가 가장 먼저 나타난 분야가 항공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2%에 해당하는 72억명이 사회적 이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항공 관련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공항공사,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 관련 7개사의 모임인 한국항공협회는 지난 4일 “3월 4주차 기준 국적사 여객기 374대 중 324대(86.6%)가 멈춰있다.”고 밝혔다. 하루 19만명이 붐비던 인천국제공항의 이용객은 5천명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10일씩 순환 무급휴직을 한 데 이어 이번 달에도 15일씩 순환 무급휴직을 한다. 대한항공도 4월 중순부터 6개월간 전 직원의 70%에 달하는 인원이 3~4개월씩 순환휴직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 1,600명 중 350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에어부산, 진에어 역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인천광역시의 자료에 따르면, 항공업 종사자 76,800여명 중 휴직 중이거나 퇴직한 인원은 24,000여명(약 31%)으로 추정된다.

하청업체의 상황은 최악이다. 한국공항공사 청소업체 EK맨파워는 청소 노동자 400명 중 74명만 남기고 해고하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운송 보조업체 에어코리아는 전 직원 강제 연차 사용 및 무급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항공 기내식 협력업체는 직원 1,800명 중 1,000명을 해고(권고사직)했다. 나머지 800명 중 300명도 휴직 상태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민생 위기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총선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비롯하여 다양한 지원책을 제안하는 것은 당장의 민생 위기가 그만큼 절박한 까닭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점차 진정되고 안정화 단계로 들어선다고 하여도 경제가 회복되고 민생이 안정되려면 그 후로도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일회성 재난지원금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의 생명과 건강, 안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인간 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자각이다. 인간 안보의 개념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엔개발계획은 인간 안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인간 안보란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이며, 가정이나 직장 등 사람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인간 안보는 군사력 위주의 전통적인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한다.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은 전쟁과 같은 군사적 위협 뿐 아니라 해고에 따른 실업과 같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전통적 안전 보장의 개념에서는 군사적 위험 요소가 주요 대상이었지만, 인간 안보에서는 사회적 위험과 정치‧경제적 위험 요소 모두가 고려 대상이다.

1994년 이래 국제 사회에서 인간 안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 왔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인간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생소하다. 안보는 곧 국방이라는 냉전 시대의 전통적인 개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의 안보의식은 여전히 냉전 시기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인간 안보란 안보의 개념이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곧 국민의 안전과 보호가 국가 안보라는 큰 담론에 희생돼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6년 전 4‧16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안보의 개념이 인간 안보로 전환돼야 한다는 사회적 성찰의 목소리가 나왔던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 안보를 넘어 인간 안보의 뜻을 되새겨야 할 때다. 인간 안보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의 끔찍한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 군사적 위협보다 결코 덜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인간 안보가 시대의 요구임을 확인하고 있다. 게다가 4‧16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이하고 있기에 인간 안보가 한국 사회에 주는 울림은 한층 더 각별하다.

미국의 국방비는 세계 국방비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 다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다. 하지만 한 해 80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쓰고 우주군까지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미국의 민낯이 속수무책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코로나19 세계 최다 사망자의 나라 미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 안보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간 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정된 국가 예산을 어디에 분배하고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최첨단의 무기와 과도한 국방비가 아니라, 탄탄한 공공의료시스템과 투명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체계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와 튼튼한 사회 안전망과 지속 가능한 환경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세금은 그렇게 쓰이지 못했으며 나라의 예산은 국가 안보에 최우선으로 배분되어졌다. 공공의료, 기초생활보장, 일자리, 환경 등을 위한 예산은 우선순위에서 국방비 다음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한국의 군사비 지출은 2019년 기준 세계 9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뉴 노멀’(new normal.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확립되는 표준)을 위해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국가 안보에서 인간 안보로 안보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인간 안보의 강화를 위하여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국방비 감축과 사회복지의 확대라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2020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