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과 정치개혁의 과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1대 총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제1야당 미래통합당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다. 탄핵 촛불 이후 진작 의회에서 퇴출되었어야 할 적폐세력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가한 셈이다. 4·15 총선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변화의 자정능력도 상실한 수구 정당을 주권자들이 투표를 통하여 강제 퇴출시킨 선거였다.

21대 총선은 촛불항쟁의 연장선에서 치러진 선거였고, 촛불 민심이 그대로 선거 결과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촛불항쟁에 참여했고 안정적인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중간층이 무능하고 대책 없는 미래통합당을 거부하고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준 결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미래통합당이 못해서 얻은 어부지리의 승리이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여서 안정 속에서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의회 권력을 장악하면서 비로소 제도 개혁의 시험대에 서게 됐다. 정부는 여태껏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하여, 의회 권력이 바뀌지 않았고 수구 세력이 의회를 보루 삼아 사사건건 비토를 일삼으면서 개혁에 제동을 건 탓이라고 해명해 왔다. 일리가 있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야당 탓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이 차지할 수 있는 최대의 권력을 갖게 되었고, 최고의 정치적 기회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진짜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다.

21대 국회에서 야당은 입법을 저지할 힘도 없다. 제도 개혁을 가로막아온 수구의 걸림돌을 깨끗이 치워줌으로써 시민들이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 여당의 21대 국회 구성으로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한껏 올라갈 것이다. 주권자로서 의무를 다했으니 개혁을 바라는 기대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민심의 기대에 부응하여, 최대의 정치적 동력을 확보한 문재인 정부가 어떤 성과를 낼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해야 하는 민주 정부의 과제가 어떻게 진전이 이뤄질지 지켜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확실하게 중간급유를 받아 연료를 가득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라고 썼다. 중간급유로 연료를 가득 채워 넣은 문 정부가 거침없는 개혁의 행보로 얼마나 민심의 기대에 보답할지, 예의 주시할 일이다.

주목할 것은 정당체제의 변화이다. 의석수 190:110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한국의 정당체제는 양당제에서 1.5당제로 바뀌었다. 다당제로의 이행이라는 한국 정치 발전의 과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수구 정당을 심판하여 정치 발전의 후퇴를 막은 것은 다행이지만, 정치 발전의 전진을 추동할 새로운 대안 정당들이 약진하지 못하고 부진한 것은 변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4월에 시행된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당시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이 새누리당 33.50%, 더불어민주당 25.54%, 국민의당 26.74%, 정의당 7.23% 등이었다. 만일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여 의석을 배분했다고 가정하면, 새누리당 100석, 더불어민주당 77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으로 된다. 하지만 실제 의석수는 새누리당 122석(+22), 더불어민주당 123석(+46), 국민의당 38석(-42), 정의당 6석(-16)이었다. 거대 양당이 소수 정당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의 의석을 대거 가져간 것이다.

독점재벌의 ‘갑질’ 못지않은 거대 양당의 횡포가 가능한 까닭은 유권자의 선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잘못된 선거제도(선거법) 때문이다. 유권자에게 선거제도란 투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규칙이다. 그런데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면 민의가 엉뚱하게 왜곡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유권자가 선거결과에 불만을 갖게 되고, 선거제도에 대하여 회의가 커지며,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선거제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존의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이 정당지지율보다 월등히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과다대표’), 반면에 소수 정당은 정당지지율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가져가는(‘과소대표’) 불합리한 제도이다. 그래서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이뤄졌다. 미약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다. 비례성(유권자의 표가 실제 의석으로 반영되는 정도)을 높여서 정당지지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이다.

하지만 이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의 꼼수 경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선거제도 개혁을 반대했던 미래통합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 합세하여 비례 위성정당 꼼수를 쓰면서 선거제도 개혁이 파투 나 버렸다. 거대 양당이 마치 꼼수 경쟁을 벌이기라도 하듯이 온갖 추태가 난무했다. 의원 ‘셀프제명’, 의원 꿔주기, 정치자금 편법 수령(세금 도둑질)…. 그 결과 연동형 비례제 부분 도입의 새 선거법은 첫 시행부터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21대 총선의 비례정당 득표율을 보자.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은 1위 정당은 미래한국당(33.84%)이고, 이어서 더불어시민당(33.35%), 정의당(9.67%), 국민의당(6.79%), 열린민주당(5.42%)의 순이었다. 만일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한다고 가정하고 각 정당의 의석수를 계산해보면, 미래통합당 114석, 더불어민주당 112석, 정의당 33석, 국민의당 23석, 열린민주당 18석으로 배분된다. 각 당이 실제 얻은 의석수와 비교해 보면, 더불어민주당만 +68석으로 유일한 수혜자이고, 나머지 정당들은 죄다 의석수를 손해 보는 피해자이다. (미래통합당 –11석, 정의당 –27석, 국민의당 –20석, 열린민주당 –15석)

현행 선거법대로 적용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위성정당의 최대 수혜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위성정당이 없을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의석수를 계산해보면 병립형 비례에서 6석을 얻는데 그친다. 하지만 더불어시민당이 실제 얻은 의석수는 17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 의석 11석을 늘린 셈이다. 미래통합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을 경우 연동형 비례에서 8석, 병립형 비례에서 7석 등 모두 15석의 비례 의석수를 가져간다. 미래한국당이 가져간 비례 의석수는 19석이다. 미래통합당도 비례 의석 4석을 더 늘린 셈이다.

손해를 본 피해자는 소수 정당들이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없었더라면,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에서 10석, 병립형 비례에서 2석 등 모두 12석을 가져간다. 그러나 정의당이 실제 얻은 비례의석수는 5석으로, 7석을 손해 봤다. 국민의당과 열린민주당 역시 위성정당이 없었을 경우 가져갈 의석수는 각각 8석과 6석으로, 지금의 3석보다 많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가져간 의석만큼 소수 정당들의 의석수가 줄어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과제는 거대 양당의 과점체제를 끝내고 다당제 정당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각계각층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정치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1대 총선의 결과는 1.5당 체제의 형성이다. 이렇게 된 것은 민의가 올바로 반영되지 않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21대 총선을 통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부분적 도입과 그것의 악용을 허용하는 허술한 선거법으로는 다당제 실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새삼 확인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선거제도의 과감한 개혁 없이 다당제 전환의 정치개혁은 무망한 일이다.

4·15 총선은 미완의 정치개혁 과제를 확인시켜 주었다.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는 선거법 개정이다. 21대 국회는 선거법 개정을 통하여 정치개혁을 완수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입법이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하였고, 선거법 개정은 여당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제 정치개혁은 오롯이 더불어민주당의 책무이다. (2020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