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오보 소동의 진상과 배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김정은 위원장 신변 이상설로 나라 안팎이 한동안 어수선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으나 일부 언론이 앞 다퉈 관련 의혹을 쏟아냈다. 서울과 워싱턴·도쿄 등의 자칭 대북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탈북자 국회의원 당선자까지 가세하여 온갖 추측과 설이 난무했다.

북 지도자의 신변과 관련한 언론의 오보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국 언론사에서 손꼽히는 특종 오보가 ‘김일성 사망 속보’ 소동이다. 1986년 11월 전두환 정권 때 ‘김일성 피격 사망’이란 속보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부 신문이 긴급 호외 속보를 발행했고, 서울발 뉴스로 국제 사회가 야단법석이었다.

“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 … 이 소문의 내용은 중공국가 주석 이선념이 지난달초 평양을 방문하기 전에 북한군 일부에서 김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암살기도 가담자들은 중공으로 도주했으며 북한이 중공 측에 대해 이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오던 중 이 사건에 가담했던 나머지 일파들이 결국 김을 암살했다는 것으로 돼 있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 1면 기사)

11월 17일 국방부 대변인은 김일성이 총에 맞아 피살됐다고 발표했고, 이기백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김일성 사망은 설이 아니라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대통령 주재 긴급 각료회의가 열리고, 한반도 정세가 초미의 관심사로 되었다. 신문들은 휴간일인 17일에도 호외를 발행했고, TV는 온종일 특집방송을 내보내면서 속보 경쟁으로 요란법석을 떨어댔다.

조선일보는 18일치 신문에서 총지면 12면 중 7면을 김일성 사망 관련 기사로 채웠다. “김일성이 열차에서 총을 맞았다” “폭탄에 당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등 온갖 미확인 정보들로 지면이 도배됐다. “40년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등 시민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주말의 동경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제목으로 자사 홍보 기사까지 실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세계적 특종’ 보도는 사흘 만에 ‘세계적 오보’로 밝혀졌다. 18일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몽골 인민혁명당 서기장을 순안비행장에서 영접하는 장면이 북 TV 뉴스에 뜬 것이다.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세계의 이목을 어지럽혔지만 ‘찌라시’ 신문은 추호도 반성하지 않았다. 오보에 대한 반성은커녕 되레 적반하장이었다. “북한의 폐쇄성이 만들어 낸 오보”였다는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조선중앙방송은 2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날 평안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오보임이 밝혀진 뒤 조선일보가 뽑은 기사 제목은 “트럼프 관심 끌기 성공한 김정은, 다음 ‘카드’는?”이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3주 가까이 잠행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계획된 전술이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 김정은이 대북 제재 완화의 키를 쥔 트럼프 대통령의 시선을 평양으로 끌기 위해 국제사회 여론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 이번 ‘이상설’이 계획된 여론전이었다면, 북한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보에 대한 책임 또는 사과는 눈곱만큼도 없다. 되레 자신들이 북의 전술과 여론전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 유고설이 퍼져나간 과정을 살펴보자. 신변 이상설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 생일(4월 15일) 참배 행사에 불참하면서 시작됐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17일 ‘분석자료’라는 글을 통해 김정은 건강에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14일 벌어진 북한의 순항 미사일 시험 발사를 거론하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김정은이 유고 상태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세종연구소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북한연구센터장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의 20일(현지시간) 긴급보도는 김정은 이상설을 증폭시켰다. CNN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CNN은 이전에도 대북 보도에서 대형 오보를 낸 전력이 있다. 2014년 11월 ‘김경희 사망설’을 보도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정은이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는데, 고모 김경희마저 숨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경희는 올해 1월 말 평양에서 열린 설맞이 공연에 김정은, 김여정 일행과 함께 참석했다. CNN이 김 위원장 이상설을 보도하자, 미 외교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북한‧중국 담당 편집인은 트위터에서 “이것(CNN 보도)은 그냥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이번 대북 오보 소동에서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국 언론의 보도라면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도 없이 덮어놓고 받아쓰기 바쁜 국내 일부 언론의 숭미(崇美) 사대주의는 불치병임이 새삼 확인되었다. 북 이상설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쌍수를 들어 맞장구치면서 가짜 뉴스 퍼 나르기에 바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반북 언행은 ‘관종 유튜버’와 다를 바 없었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라는 탈북자들까지 가세한 점이다. 태 아무개란 자는 지난달 28일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해 “한 가지 분명한 건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말했고, 지 아무개란 자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하고 있다. 지난 주말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의원 임기 시작도 전에 벌써 이런 지경이니,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대북 허위정보의 거짓 선전·선동 스피커 노릇에 대한 면죄부로 악용될 게 불을 보듯 빤하다.

주목할 것은 이번 대북 오보 소동의 배후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4‧15 총선 다음날 정부가 국회에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했다. 7조6천억원 규모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국방 예산 50조2천억원 중 9047억원을 삭감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국 무기 구매 예산 가운데 계약이나 시험 운영이 지연되는 사업의 지출 등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보수 언론은 즉각 ‘국방 예산을 빼내 재난지원금을 줘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고 비난했다. 국방 예산을 삭감한 것에 대해 미국 조야가 들썩이고 있다는 특파원 기사가 뒤따랐다. 그리고 때마침 김정은 위원장 신병 이상설이 등장했고, 미군은 해군 해상초계기 P-3C, 공군 정찰기 E-8C 등의 정찰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했다. 뒤이어 한미가 지난해 연기했던 연합공중훈련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한미 연합공중훈련은 지난 2017년까지는 ‘비질런트 에이스’라는 이름으로 미군 전략자산이 대거 투입돼 실시됐다. 하지만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를 계기로 같은 해 12월에는 대대급 훈련으로 축소돼 실시됐고, 지난해에는 한미 간 합의로 연합공중훈련을 연기한 바 있다.

4월 16일 이후 뜬금없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불거진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대북 오보 소동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주시해야 한다. 날조된 가짜 뉴스가 퍼지고 그것을 기화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왜 그랬을까? 한국 정부가 국방 예산을 삭감하여 미국산 무기 구입을 미루거나 취소하면 미국 방산업체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역으로 추적해 보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변 이상설 날조의 배후가 드러난다. 대북 오보 소동의 발단은 국방 예산 삭감을 포함한 2차 추경안 제출이었고, 그 배후는 군축에 반발한 미국 군산복합체였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렇다면 국방비 삭감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달 30일 2차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와 여당이 재난지원금을 100%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2차 추경안은 애초 정부안보다 4조6천억원 늘어난 12조2천억원으로 확정됐고, 국방비는 1조4758억원이 삭감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군축이다! (2020년 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