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심화와 피케티의 대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통계청이 21일 올해 1/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가구의 소비는 전년 동기보다 6% 줄고, 소득은 3.7%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 소득이 늘었다고? 평균의 함정이다.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는 소득이 줄고 지출이 가장 많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는 소비가 줄긴 했으나 소득은 가장 많이 늘었다. 코로나19가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소득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5.41배로, 지난해 1/4분기 5.18배에 비하여 0.23배 포인트 높아졌다. 5분위 배율은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5.41이면 5분위 소득이 1분위 소득보다 5.41배 많다는 의미다. 값이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함을 나타낸다. 과거 경제 위기 때도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5분위 배율은 외환위기 당시 1997년 3.80에서 1998년 4.55로 악화됐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08년 4.88에서 2009년 4.97로 높아졌다.

1~3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이 1년 전보다 2.5~4.2% 줄었다. 하위 60%의 근로소득이 동반 감소한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통계청 조사를 10분위별로 보면, 소득 하위 10%의 가구에서는 근로소득이 29.2%나 줄었다. 임시·일용직 등의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근로소득이 줄어든 결과다.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는 올해 1/4분기에만 26만9천명이 감소했다. 고용위기가 저소득 근로자 가구에 집중됐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4·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각각 7.8%, 2.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분위 가구의 가계지출은 1년 전보다 10.8%나 줄었다. 통계청이 2003년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 감소폭이다. 가장 많이 줄인 것은 교육비로 49.8%나 감소했다. 다른 계층이 10~20%대의 감소폭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소득 불평등에 따른 학력 격차와 교육 불평등이 우려된다. 이렇게 지출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1분위 가구의 53%는 적자 살림을 면치 못했다. (25만1천원 적자)

분명히 해둘 것은 소득 양극화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던 소득 불평등이 코로나19로 더욱 심하게 나빠지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은행은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소득 불평등 심화 배경과 대응관계’라는 보고서에서 “소득 불평등이 경제위기 등으로 단기간에 악화됐다기보다는 구조적·정책적 요인에 따라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히 악화돼 왔다”고 분석한 바 있다.

통계청의 1/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는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향후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2/4분기 이후부터 코로나19 고용 충격이 본격화될 텐데, 벌써 4월 들어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는 78만3천명이나 급감했다. 설상가상이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부의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19 다음 팬데믹은 불평등’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는데 단 3개월이 걸렸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난한 계층은 코로나19로 생계가 더욱 막막해진 반면 부유한 계층은 새로운 부의 증식 기회를 거머쥠으로써 부의 불평등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보고서 ‘2020 억만장자 노다지(Billionaire Bonanza)’에 따르면, 3월 18일~4월 10일 3주 동안에 미국의 실업률이 15%로 급증하면서 22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미국 억만장자의 부는 약 10%나 증가해 2282억달러(약 345조원)가 늘었다. 보고서는 또 억만장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때 입은 손실을 만회하는데 30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고, 2010년~2020년 사이에 그들의 부는 80.6%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중산층의 부는 2019년까지도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억만장자들의 부는 1990년 이후 30년 사이에 1130%나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위층의 증가율 5.36%보다 200배 이상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코로나19 팬데믹이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제통화기금 블로그에 지난 11일 ‘전염병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먼 곳으로 남겨 놓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 재앙이며, 특히 취약계층에 훨씬 더 악영향을 미쳐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과거 전염병 대유행 사례인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2년), 에볼라(2014년), 지카(2016년) 등 5개 사례를 추적해 그 영향을 살폈다. 175개국을 조사한 결과 전염병 발생 뒤 5년 후에 불평등의 지표인 지니계수가 1.5%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2013년 <21세기 자본>을 펴내 세계적 명성을 얻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지난 12일 영국 가디언과 한 회견에서, “이번(코로나19) 위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높은 불평등 수준이 드러난 것이고, 우리는 현재 그런 불평등의 폭력과 대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세기 전과 비교하면 불평등이 개선됐으나, 40년 전인 1980년대에 비하면 불평등성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는 지난해 9월 발간한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불평등은 경제와 기술이 아니라 이념과 정치의 문제”라고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불평등의 기원이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있음을 역사적으로 논증하고 불평등의 심화를 막을 대안을 제시했다.

피케티가 불평등 해소의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기본 자산’ 주장이다. 기본 소득에서 더 나아가 기본 자산을 주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1인당 평균 자산이 20만 유로인데, 이것의 60%인 12만 유로(약 1억6천만원)를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지급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인구의 절반이 부모로부터 아무런 자산도 물려받지 못하는 현실인데, 기본 자산을 제공하여 ‘인생의 출발선’을 공정하게 바꿈으로써 불평등의 근원을 해소하자는 획기적인 주장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됐거나 기술변화에 따라 축적된 것이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모든 체제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불평등을 제도화‧정당화시켰고 법과 세금, 사유재산, 교육 체계를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켜 왔다. 그는 모든 불평등 사회란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당화는 사유재산의 신성화로 귀결되며, 사유재산권을 신성불가침의 금기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이란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된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너머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도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변혁을 통해 더 평등한 사회로 탈바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어떤 체제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새로운 대안 체제를 구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주저하고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피케티는 중세의 흑사병이 봉건제를 무너뜨리며 사회 변화를 가져온 것을 예로 들면서, “코로나19는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 구축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피케티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위기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며 “진보는 사회 안전과 진보적인 조세체계를 마련하고, 우리의 재산권 체계를 바꾸려는 정치적‧지적인 운동에 의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2020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