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맹과 혐오 조장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논란이다. 북측의 비판이 예사롭지 않다. 4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를 시작으로, 5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 7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대남 선전매체의 대남 비판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담화를 발표한 그날 통일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겠다’는 정부 입장을 내놓았다. 청와대도 “대북전단은 백해무익한 안보 위해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면서 공격 수위를 더 높였다.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북미 선순환관계 정책에 대해 “악순환관계이지 어떻게 선순환관계인가”라면서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 타령”이라고 깎아내렸다.

연일 남측을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는 북측의 발언에 대해 반북 수구 언론의 반응이 어떨지는 익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총선 참패로 가뜩이나 심사가 불편하고 뒤틀려 있던 차에 호재를 만난 듯이 남북 양측 정부를 싸잡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반북 수구 입장은 아니지만 유감을 표하는 비판적 견해도 적지 않다. 북측의 발언이 남측 여론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고 오히려 부정적 여론만 확산시킬 뿐이라는 우려에서다. 북측은 남북관계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대남 압박을 중단하고 정부도 상황을 관리하면서 대북 접근 방식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자 단체는 한국전쟁 70주년인 오는 25일에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100만장을 날려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탈북자 단체의 전단은 극도의 증오·혐오 표현으로 북측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쓸데없이 긴장을 조성하여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만 끼치고, 남북관계를 파탄의 수렁에 빠뜨리려는 불순한 목적의 대북전단 살포는 규제되어 마땅하다. 게다가 6‧15선언 20주년을 앞두고 이런 논란이 가열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구조맹’(構造盲)의 ‘피해자 탓하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불완전하여 빛깔을 가리지 못하거나 다른 빛깔로 잘못 보는 상태를 색명(色盲)이라고 하듯이, 구조맹이란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구조를 보지 않고 모든 원인과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를 일컫는 속어다. 정치사회 구조의 맥락을 떠나 현상으로 나타난 미시적인 증거나 팩트를 절대화하면 인과관계가 뒤바뀌어 원인을 은폐하고 책임을 잘못 떠넘기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대북전단 살포 중단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명확히 적시돼 있다. 4·27 판문점선언은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명시했다.(2조 1항).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9·19 군사합의)도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1조 서문)고 밝혔다.

그러므로 대북전단 살포는 명백한 남북합의 위반이다. 그런데, 지난해에 10차례, 올해 들어 3차례나 대북전단이 뿌려졌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변명의 여지없는 합의 위반이다. 역사적인 선언과 합의에 대한 파기는 남북 사이에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고 긴장만을 격화시킬 따름이다. 북측의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 발언이 거칠고 과격하다고 하여 그 발언의 표현만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는 것은 구조맹의 피해자 탓하기에 다름 아니다. 불신과 적대의 원인을 제공한 남측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북측의 발언만 탓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더구나 북측의 숨은 의도를 해석한답시고 내놓는 억측이 가관이다. ‘남측에 대한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뭔가 모종의 협상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협박이라기보다 남측이 먼저 교류와 협력에 나서라는 숨은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해석이다. ‘지금껏 문제 삼지 않다가 이번 살포를 특별히 문제시 하는 것을 보면 대화와 협상을 바라는 것 같다’는 해석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북측의 비판이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는데, 대남 비난을 높이지 말고 대화 나서야 한다’라고 충고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부당한 사회적 혐오의 조장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2017년에 낸 책 <혐오 사회>에서 사회적 혐오 문제의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비고 취재하면서 혐오와 증오가 무엇이며 어떻게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협하는지 분석하였다.

<혐오 사회>에서 몇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증오하는 자에게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 의심하는 자는 증오할 수 없다.” 부당한 증오는 확증편향과 단단히 연결돼 있음을, 우리는 태극기부대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혐오와 증오는 개인적인 것도 우발적인 것도 아니다. …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혐오의 대상은 “위험한 힘을 지녔거나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힌다. 그 결과 혐오의 대상을 향한 온갖 공격과 폭력은 마땅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은 그들을 위험한 존재 또는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북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2018년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조미정상회담 개최로 한동안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었다. 하지만 북은 또 다시 ‘악의 축’이라고 낙인찍힌 비정상적 국가로서 “위험한 힘을 지녔거나 열등한 존재”의 혐오 이미지로 되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그러지 않아도 몹시 어려운 상황인데 ‘북은 왜 또 저러느냐?’는 분노의 감정이 부추겨지고 있다.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개인 또는 세력은 그것을 통하여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엠케는 제안한다.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혐오의 선동가와 가해자 개인이나 집단 자체보다는 그들의 구체적인 말과 행동, 그리고 그 결과를 유심히 관찰하고 구별하여 비판하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 혐오 ‘행위’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혐오 현상으로부터 군중 심리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또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면서 이것을 통해 경제적 이익(‘시청률’ ‘득표수’ ‘베스트셀러’ 등)을 취한다. 일부 악성 유튜버들이 구독자 늘리기와 클릭 수를 통한 돈벌이에 환장하여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대북전단 살포 논란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북합의의 법제화다. 남북합의의 법제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이전 정권에서 이뤄진 남북 간 약속이 쉽게 번복되는 악순환을 깨겠다’고 공언했었다. 2017년 6월 15일 6‧15공동선언 기념식에서는 “역대 정권에서 추진한 남북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반드시 존중돼야 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면서 “남북합의를 준수하고 법제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지키면,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은 더 이상 벌어질 일이 없다. 21대 국회가 개원했고 남북합의를 법제화하면 된다. 주지하듯이 4‧15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21대 국회에서 수구 야당의 발목잡기는 불가능하다. 볼썽사나운 논란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겠다’는 통일부 발표가 빈말이 아님을 실행으로 입증해야 한다. (2020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