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주의와 수평폭력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2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계획을 발표했다. 보안검색(1902명), 공항소방대(211명), 야생동물통제(30명) 등 생명·안전과 밀접한 3개 분야는 공사가 직고용하고, 공항운영(2423명), 공항시설·시스템(3490명), 보안경비(1729명) 등 7642명은 3개 전문 자회사 소속으로 각각 전환해 정규직화 한다는 내용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만에 인천공항을 직접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당시에 인천공항공사에는 1만490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는데, 이 중 정규직 노동자는 1265명으로 12%에 불과했다. 현재 전체 직원 1만1400여명 중에서 정규직이 1400여명이고, 나머지 1만여명(정확히 9785명)이 비정규직이다. 우리가 인천공항 이용 시에 만나게 되는 직원의 87%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출입국 보안이 절대 중요한 국제공항의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발표 직후 이른바 ‘인국공 사태’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사태’로 비화됐다. 발표 다음날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닷새 만에 지지자가 25만명을 넘었다. 청원인은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는 것이 평등이냐”고 반문하며 “(비정규직의 정규화는) 역차별이고 청년들에게 더 큰 불행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1면에 ‘운 좋으면 정규직, 이게 K직고용’이라는 선정적 제목 아래 “각 대학 커뮤니티, 취업 정보 카페 등 20~30대가 즐겨 찾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들은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 직고용 발표를 ‘인국공 사태’라고 불렀다”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2면에 ‘알바하다 인천공항 정규직…취준생 공부하기 싫어진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공개채용 시험을 준비해 온 대학생·취준생 사이에서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라고 가세했다.

청년들이 역차별에 분노한다는데, 언론이 말하는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항 보안검색 요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라면 본인이 원하는 직종의 처우가 개선되니까 환영해야 마땅하지 왜 분노한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또한 그동안 비정규직으로 10여년 동안 고생했던 사람들의 경력은 바늘 끝만큼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취업준비생 청년의 노력은 소중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력은 무시하는 것이 ‘평등’이란 말인가? 더구나 보안검색 요원은 공사 사무직 공개채용과는 관련이 없는 직군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직군과 공채로 뽑는 사무직 직군은 채용 절차가 구분되고, 기존에 공항공사 정규직 공채를 준비하던 이들의 신규채용 입사에 불이익을 받는 부분도 없다. 영어교사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사람이 체육교사의 임용전형방식이 달라졌다고 분노할 까닭이 있는가?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사 정규직 신입사원의 초봉은 연 4500만원, 직원 전체 평균연봉은 약 9100만원 수준이다. 협력업체 소속인 보안검색 요원들의 초봉은 약 3600만원, 평균연봉은 약 3800만원이었다. 이들이 공사 직고용으로 전환되면 급여가 연 100만원 정도 인상된다. 용역업체에서 가져가던 관리비·이윤 등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데 따른 것일 뿐 비용이 추가로 더 들지도 않는다. 그래봐야 일반직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언론의 탈을 쓴 기레기들은 ‘알바 하다가 하루아침에 연봉 5000만원’이라고 흑색선전을 해대고 있다. 기레기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가짜 뉴스는 탄로 나게 마련이다.

‘인국공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차별의식의 내면화, 차별주의에 대한 성찰이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 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 곳을 들어가려고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은 물론 현직자들은 무슨 죄입니까?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그냥 다 전환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 전환자 중에는 알바몬 같은 정말 알바로 들어온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은 아예 차별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스펙’과 ‘토익 만점’을 내세워서, 그리고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신분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 대학입시 때 한 번 본 수능성적으로 평생의 신분이 정해지는 학벌서열과 무엇이 다른가? 같은 대학이라도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를 차별하고, 대학원에서도 자기 대학 학부 출신이 아니라고 차별하며,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임대아파트라고 차별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은, 이런 뿌리 깊은 차별의식을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주장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그만해 달라고 요구하는 속내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공채 시험에 합격해 입사한 사무직 정규직은 비정규직에서 전환된 정규직과는 출신 성분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신분의 구별(차별)을 두어야 한다는 논리다. 조선 시대에 첩의 자식과 그 자손을 차별하던 서얼제도처럼, 정규직이라도 출신에 따라서 신분을 구별하고 처우를 차별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조선 시대의 신분제 차별과 뭐가 다른가? 그렇게 따지면, 같은 판사라도 서울법대 출신의 이회창과 부산상고 출신의 노무현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출신 성분에 따른 위계질서라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인국공 사태’를 보면서 또 하나 돌아봐야 할 것은 수평폭력이다. 프란츠 파농은 폭력을 수평폭력과 수직폭력으로 구분했다. 지배계급이 피지배 계급에게 행하는 폭력, 다시 말해 갑이 을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수직폭력이다. 이와 달리 을들끼리 행하는 폭력이 수평폭력이다.

알제리를 식민지 지배했던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선천적으로 저열하고 폭력적이며, 이유 없이 살인하고 범죄 성향이 강하다. 깜둥이들은 원래 폭력적이다”라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파농은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알제리 국민들이 폭력적인(수평폭력) 이유는 바로 프랑스인들이 가하는 수직폭력 때문이다”라고 반박한다. 파농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수직폭력으로부터 피해를 크게 입을수록, 수평폭력의 유혹에 빠진다. 자신을 곤궁한 처지로 몰아넣은 것은 지배계급이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민중들은 자기보다 못하거나 약한 사람을 죽이고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한과 고통을 푸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수평폭력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박 사장에게 기생해서 살던 기택의 가족도, 문광과 근세 부부도 똑같은 을의 신세다. 하지만 그들은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 상승’을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혈투를 벌인다. 충숙은 살기 위해 튀어나온 문광을 스스럼없이 지하로 밀어버리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먼저 올라서기 위하여 수평폭력이 난무한다.

한국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정규직·비정규직이 신분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일자리를 두고 을끼리 다투는 사회가 됐다. 1950년대 알제리의 수평폭력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이유다. 수평폭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수직폭력이며, 따라서 수직폭력을 제거해야 수평폭력이 해결된다. 을들은 을들끼리 수평폭력을 가하면서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수직폭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연대해야 한다. 갑질 횡포를 저지하려면 을들끼리 힘을 합치고 갑에 대항하여 맞서야 하는 것이다. (2020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