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우산’ 자처한 김명환 지도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임시대의원대회 개최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논쟁과 갈등을 조기에 수습하는 길은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한 조직적 결정뿐이며, 7월 20일 주중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온라인 대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종안이 부결된다면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전원 바로 사퇴하는 것으로 책임”지겠다고 지도부 거취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들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합의 최종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선 노조 간부들조차도 합의안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언론에 보도되는 단편적인 뉴스를 통하여 전해들었을 뿐 뭐가 뭔지 깜깜이라는 게 진짜 문제다. 오죽했으면 중집위원들이 “지난 교섭 과정은 중집의 결정을 번번이 어기고, 김명환 위원장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또한, 교섭 내용을 신속히 조직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위원장과 교섭단의 태도는 많은 조합원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라고 비판 성명을 발표했겠는가.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내부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교섭 시한을 6월 30일로 정하고 압축적인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모든 내용이 실시간으로 공개될 여건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내용이 변화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마지막까지 정리된 최종안이 중앙위나 각 단위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차가 있어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라고 답변했다. 자기 합리화의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또한 김 위원장은 “중집 내부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있었다. 그렇다고 중집에서만 그쳤다면 이번 최종안이 어떤 내용인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몰랐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의원대회로 가는 과정을 거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도 이번 최종안 내용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공유가 이뤄질 거라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이 무슨 ‘유체이탈 화법’인가! 대다수 중집위원들이 중집에 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마당에,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도 공유한다고?

사회적 교섭이 진행되고 잠정합의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조합원과 대의원은 주체가 아니었다. 주체는커녕 구경꾼도 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최종안이 나오고 나서도 그걸 구하기도 어렵고 변변한 설명을 들을 기회도 없었다. 설사 어떤 조항에서 무슨 진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조합원들을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은 자주성과 민주성의 민주노조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위원장과 교섭단의 태도는 대리주의이고, 지도부의 관료주의를 방증한다.

조합원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김명환 지도부의 소통 방식이 기자간담회인 것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조합원을 직접 만나 소통하려면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오랜 전통이고 민주노조 간부의 상식이다. 기자간담회 방식은 상층의 관료화된 간부들이 선호하는 것이지 현장 조합원들과 소통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조합원들은 또 뉴스를 통해서 기자간담회 소식을 들어야 할 게 아닌가. ‘길을 잃고 앞이 안 보일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운동의 철칙이다.

심리학 용어 중에 ‘가용성 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자신의 경험 혹은 자주 들어서 익숙하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토대로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오류를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노는 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다.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물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물 밖의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사정 협의의 틀에 매달려 정계‧재계의 고위층들과 교섭하다 보면 현장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고, 현장 조합원의 절박성에 대해 관념으로 이해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가용성 편향에 빠지면 소통의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나마 최선의 합의안을 가까스로 도출해냈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그래서 절대 다수 중집위원들의 반대에 봉착했을 때, 왜 지도부의 진정성과 합의안의 성과를 몰라주느냐고 타박하고 되레 서운하게 여길 수 있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중집이 아니라 대대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심각한 가용성 편향이다.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 격언이다.

김명환 지도부의 위험한 사고는 기자회견문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회견문에서는 “최종안이 조직적으로 승인되면 … 가맹산하조직의 노정 교섭력을 높이고 자동차 제조업, 항공, 서비스 산업, 공공부문 노정관계, 공공 비정규직과 공무직위원회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우산이 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밑줄까지 그어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큰 우산’이 되겠다고.

신영복 선생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데 김명환 지도부는 ‘함께 비를 맞겠다’고 선언할 대신에 ‘큰 우산이 되겠다’고 자처한다. 그러면서 “100만 민주노총을 넘어 2,500만 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주노총, 5,000만 국민과 8,000만 겨레와 함께하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최종안을 승인해”달라고 호소한다. 노사정 잠정합의안에 이런 어마어마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무엇보다도 우산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2020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