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문제에 민감해져야 한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1대 국회를 장악한 여당이 부동산 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켰고,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23번째 부동산 대책인 셈이다. 공급이 늘어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용적률을 높이고, 강남권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며, 태릉골프장 등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등의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이 발표될 모양이다.

하지만 2018년 9월 서울 근교에 3기 신도시를 세워 주택 30만 채를 공급하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2008년 상위 1%가 소유한 주택 수가 3.5채였는데 10년 뒤인 2018년에는 7채로 늘었다. 공급을 늘려봐야 실수요자들이 사는 게 아니라 돈 많은 다주택자들이 사들인다는 뜻이다. 집 없는 서민들은 집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다.

투기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게 아니라면,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크게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2018년 공공임대주택은 약 300만 채인데, 서울은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보다 한참 낮다. 네덜란드 40%, 영국 22%, 스웨덴·독일 등은 20% 수준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정부의 지원이 줄었다. 독일에서는 정부 주거 지원 축소로 공공임대주택이 2006년에 209만 4200채에서 2018년에는 117만 6500채로 줄었고, 이로 인해 베를린에선 2016~2017년 사이에 주택 가격이 20.5%나 상승했다. 2019년 베를린에서 임대료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값 안정 대책으로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냈다. 더불어민주당은 ‘행정수도완성 추진단’을 구성하고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의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연 정부 여당의 정책이 얼마나 진정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의구심부터 든다. 그동안 수도권 신도시 개발, 삼성동 105층 현대사옥 개발 허용, 삼성역 복합환승센터 개발, 공기업 이전지 고밀도 개발 등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국토의 균형 발전’ 운운하면서 행정수도 완성을 꺼내 드는 것은 위선적이고 앞뒤가 안 맞다. 민심의 분노가 심상치 않고 궁지에 몰리자, 국면 전환용 카드로 꺼낸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게다가 행정수도 이전의 효과도 의문이다. 정부청사를 세종시에 건립한 뒤에도 서울 집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올랐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로 서울의 집값 불안이 세종시로 확산될 우려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 추진단장 우원식 의원도 “말만 꺼내면 말한 곳이 바로 난리가 나니 참 어렵다. 일단은 (집값 상승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수도 이전 논의 과정에서 이를 악용하는 투기세력이 생긴다면 정부가 엄격한 정책을 내서 막아야 할 것이다.”라고 인정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7월 20일까지 21.36%의 상승률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큰 오름세였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이유는 초저금리 시대에 시중에 넘쳐나는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넘치는 달러 유동성이 금, 주식 등 자산가격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달러의 대체재 속성이 강한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8월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1.05%(20.5) 오른 1962.8달러로 마감했다. 12월 인도분 금은 장중에 사상 첫 20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 금시장에서도 금 현물 1ｇ당 가격은 7만8490원으로 연초 대비 38% 상승했다. 국제 은 가격 상승세는 더 가팔라 3월 저점에서 2배 넘게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과잉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식량 위기의 문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식량 위기가 벌어졌다. 미국 정부가 양적 완화 정책으로 4조 달러를 찍어서 시장에 퍼부었고, 그 이후에 식량 위기가 터졌다. 대규모로 달러를 찍게 되면 상품의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당시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밀 가격은 사상 최초로 톤당 400달러를 찍었고, 콩 역시 처음으로 500달러를 넘었다. 그 전까지 밀은 100달러대, 콩은 200달러대였다. 그 결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37개국을 식량 긴급 위기국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식량의 절대 생산량이 아니다. 생산량과 관계없이 식량 위기가 일어났다. 2008~2009년 밀의 생산량은 6억8300만 톤으로 소비량(6억3600만 톤)보다 많았다. 쌀도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쌀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많았다. 식량 위기는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 나타난 현상이 결코 아니다. 금융위기에 의해서 파생된 위기이다. 양적 완화 정책으로 대량의 화폐가 발행되고 그것이 식량 시장에 투자돼 벌어진 사태인 것이다.

이번에는 더 큰 식량 위기가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이 돈을 풀기 위해 사들인 자산은 6월 중순 7조1700억 달러로 지난해말보다 3조 달러 넘게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1년까지 늘어난 연준 자산 2조200억 달러보다 많다. 최근 미국의 통화량(M2·광의 통화) 증가율은 전년 대비 24%로 역대 최고다. 미국의 양적 완화에다가 유럽 국가들과 일본마저 화폐 찍기에 가세한다면 거품 자본은 10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다.

벌써부터 국제곡물시장에서 쌀·밀 등의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 쌀 가격 기준인 태국 백미 1톤 가격이 500~570달러(우리 돈 69만~70만 원)에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2013년 4월 이후 7년 만에 최고 가격으로 폭등한 것이다. 외신은 쌀 주요 수출국인 태국과 베트남에 가뭄이 발생해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로 쌀 사재기와 공급 불안이 발생해 쌀 가격이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카고 밀 선물가격도 3월에만 8% 올랐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6월 ‘50년 만의 최악 식량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4월과 5월 세계 식량가격은 내려갔다. 곡물, 기름 생산용 종자, 육류와 설탕 등을 종합한 5월의 FAO ‘식량가격지수’는 162.5로 1월의 183.0에서 떨어졌다. 육류는 올들어 183.8에서 168.0으로, 유제품은 200.6에서 181.8로 떨어졌다. 하지만 주곡의 값은 변동이 적었고, 쌀값과 밀값은 4월에도 올랐다. 베트남과 러시아가 코로나19를 이유로 각기 쌀과 밀 수출을 제한한 탓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문제는 식량의 양이 아니다. 곡물 수급망이 원활하지 않고 곡물 비축이나 사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쪽에선 식료품값이 올라가는데 산지에서는 수확하지 못한 곡물이나 시장에 내다팔지 못해 쌓아둔 작물이 썩어나간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식량 수입국에서 시장이 무너지는 걸 무엇보다 걱정한다. 도시 빈곤층은 시장에 먹을거리가 안 들어오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식량 위기 사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5~2018년 우리나라의 3년 평균 곡물 자급률은 23%다. 세계 평균 101.5%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쌀은 자급률이 104.7%에 이르지만, 보리와 콩은 각각 24.6%, 옥수수 3.7%에 불과하다. 밀은 전체 소비량 중 99.1%를 수입에 의존한다. 주곡의 자급률이 높아서 당장은 걱정이 크지 않지만, 곡물 자급률이 형편없이 낮아 식량 위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서 결코 안심할 처지가 아니고 우려를 떨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세력이 민생문제에 한층 더 민감해져야 한다. (2020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