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 중단해야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유례없이 긴 장마와 폭우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남부지역 곳곳에서 폭우가 쏟아져 급기야 섬진강과 낙동강 둑이 터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6월 중부지방에 장마가 시작된 이래 47일째인 9일 사망자가 39명, 실종자가 11명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은 호우와 태풍으로 78명이 사망·실종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태풍 ‘장미’가 10일 오후 남해안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보되고 있어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북측도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수해 현장을 찾았다고 7일 북측 언론이 보도했다. 기상청은 이번 주에도 한반도 중북부 지방에 비가 계속 쏟아질 것으로 예보한다. 임진강 상류에 있는 북측 황강댐에서 다시 물을 남측으로 방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임진강 하류 지역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 침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오후 홍수 피해 점검을 위해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측에서 황강댐 방류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군남댐 수량 관리에 큰 도움이 될 텐데 그게 아쉽게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진강 중류에 있는 군남댐은 황강댐이 방류를 하더라도 수해를 당하지 않도록 2010년에 건설한 댐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역시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최근 북쪽의 일방적인 방류 조처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남북 간 정치군사적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도적 분야와 남북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과 직결된 부분은 남북 소통이 즉시 재개될 필요가 있다.”며 “방송 등 어떤 연락 통로도 좋다.”고 밝혔다.

2009년 9월 북측이 황강댐 물을 예고 없이 방류해 경기 연천에서 6명이 숨진 적이 있다. 남북은 그해 10월 황강댐 방류 시 사전 통보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6일 북측의 황강댐 방류 때 남측에 사전 통보가 없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직접 나서 재발 방지를 북측에 촉구한 셈이다.

지금은 황강댐 방류를 사전에 통보해주는 식의 남북 간 인도적 협력이 시급하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악화돼도 동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접경지역 홍수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는 공동 대응을 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6월 남북을 잇는 모든 통신수단이 끊겼고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다. 남북이 긴밀히 협력하여 재해에 공동 대처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소통조차 이뤄지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장,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인사를 대폭 교체하여 교착 상태의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인영 장관의 발언은 화려하다. “북미의 시간이 아닌 남북의 시간”, “평화의 문 닫히기 전에 다시 평화의 길 개척”,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같은 인도협력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 우리의 쌀과 약품 등을 주고받는 물물교환 추진” 등등. 6일 통일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1000만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으로는 꽉 막힌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이고 훨씬 심각한 문제가 남북관계 타개의 걸림돌로 되고 있어서다.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제동장치인 한미워킹그룹을 그대로 두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미워킹그룹은 제재와 관련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기능도 있다.”면서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심지어 “미국의 지지와 신뢰에 바탕 한 남북관계 진전”을 운운하기도 했다. 그러니 남북관계 개선에서 과연 무엇을 기대할 게 있겠는가.

게다가 하반기 한미연합훈련이 8월 중순 실시될 예정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밝혔고, 미국 국방부도 8월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조너선 호프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기동훈련에 일부 변화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우린 훈련을 중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오는 16일부터 28일까지 현역 장병들의 군 체력단련장 이용을 금지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체력단련장은 군 당국이 군 골프장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로 미뤄볼 때 올해 한미연합훈련은 16~28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미국 본토 증원 병력이 입국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훈련 규모가 예년에 비해 축소될 전망이다. 정부는 축소된 형태의 지휘소 훈련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규모가 축소됐다고 하여 한미연합훈련의 대북적대 공격성이 변한 게 아니다. 이 연합훈련은 미국의 증원 병력이 한반도에 배치되고 북측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작전계획 5015’에 의해 실시되는 군사훈련이다. 대북적대 정책을 바꾸지 않은 채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떠들어봐야 그것은 입으로만 헛된 염불을 외우는 데 지나지 않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한미워킹그룹의 논의를 거칠 필요도 없고,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우리 정부가 결심만 하면 아무런 제약 없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올 2월에 예정됐던 한미연합훈련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취소했었다. 문재인 정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수해까지 겹쳤는데, 굳이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북적대 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것은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된다는 걸 문재인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남북의 인도주의적 협력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남북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장관 몇 사람 교체한다고 무너진 신뢰가 복구되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합의서를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북적대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더 나빠지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수해까지 겹쳐서 피해가 막심하다. 경제가 어렵고 민생이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굳이 군사훈련에 막대한 혈세를 낭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겹치는 재난으로 좌절감에 빠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복구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군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군사훈련이 아니다. 군민이 하나 되어 재난을 극복하는 일이 우선 급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미연합훈련이 아니라, 남북이 협력하여 재난을 함께 극복하는 일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를 복으로 바꾸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남북이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함께 힘을 합쳐 공동으로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의 용단이 필요하다. (2020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