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해방과 진정한 광복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국방부가 지난 10일 ‘2021년~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총 예산 300조7000억원이 투입되고, 2024년에는 국방 예산이 60조원을 돌파한다. 올해 처음 50조원을 넘어선 국방 예산이 4년 만에 60조원으로 뛰고, 이 기간 안에 한국은 일본의 국방비를 추월한다.

2020년도 국방예산은 50조 1527억원이다. ‘국방비 50조원 클럽’에 든 나라는 미국·중국·사우디아라비아·일본·러시아 등이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군사력은 이미 세계 6위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군사력이 올해 6위로 뛰어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도 국방비는 40조 3347억원이었다. 3년 만에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안보를 내세웠던 독재 정부 때보다 빠른 증가세다.

독재 정부보다 민주 정부에서 국방비는 더 늘었다. 노무현 정부 때 국방비는 연평균 8.9%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6.1%)와 박근혜 정부(4.1%) 시절에 국방비 증가율이 오히려 낮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국방비 증가율은 연평균 7.5%로 뛰었다. 특히 무기 개발과 도입에 쓰이는 방위력개선비의 증가율은 11.0%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2009~2017)의 증가율 5.3%의 2배를 뛰어넘었다. 국방비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가 이전 독재 정부보다 더 나빠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역대급 군비 증강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시비하고 반대를 일삼는 수구 언론과 미래통합당조차 군비 증강에 대해서만큼은 일체 입을 다문다. 미‧중 신냉전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 등 주변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비 증강이 필요하며,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도 군비 증강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우리 정부에서 국방비의 증가율이 두 배, 방위력 개선비의 증가율은 세 배로 늘어났다. 올해 국방 예산은 역대 최초로 50조 원을 돌파했다.”며 “앞으로도 우리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우리 손으로 만드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방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다시 말해 ‘자주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국방 예산을 크게 늘려 군비를 증강하며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고 자주 국방이 되느냐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한국 군대의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은 미국이 갖고 있다. 데프콘3이 발령되면 우리 군의 작전지휘권이 한미연합사령부에 이양된다.(데프콘은 비전시상태에서 사용되는 전투준비단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5단계에서 1단계로 높아진다.)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을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하고 있으므로, 데프콘3 이상에서는 우리 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설령 한국군이 세계 최고의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우리 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없다면 자주 국방을 말할 자격이 없다. 전작권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이 가능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비의 증강과 첨단 무기의 개발‧도입 이전에 먼저 전작권부터 환수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자주 국방의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완료하려고 했던 전작권 반환 구상이 물 건너가고 있다. 미국이 ‘전환 조건 검증’을 이유로 몽니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환 조건 검증?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려면 전작권 반환 논의의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 미국은 2007년 2월 노무현 정부에게 2012년 4월 17일 전작권 반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전작권 반환 시기가 2015년 12월 1일로 늦춰졌고, 박근혜 정권은 한 차례 늦췄던 전작권 전환 시기를 다시 연기하면서 시기 자체를 아예 못 박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2014년 10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는데, ‘전환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미군이 특정 시한 없이 전작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내용이다.

이 각서에 따르면, 전작권 전환 조건은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안보 환경 조성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의 핵심 능력 구비 △국지 도발과 전면전 시 초기 단계에서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능력 구비 등 세 가지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이뤄질 때 전환을 논의하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전작권을 반환한다는 것이다. 검증을 위해 한국군의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 등을 차례로 평가하는 3단계 절차가 설정됐다.

우리의 군사 주권을 되찾겠다는 데 애시당초 그 무슨 ‘전환 조건’을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하물며 전작권을 환수하는 데 미국의 검증 과정을 통과해야 하고 까다로운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말이 좋아 ‘전작권 전환’이지, 이거야 사실상 미국의 판단과 처분에 맡기겠다는 뜻인데, 대체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전작권을 돌려준단 말인가? 그러니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양해각서’는 실은 ‘전작권 반환 포기 각서’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기본운용능력 검증 절차를 거쳤고,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에서 완전운용능력 검증 단계를 통과한 다음에. 이어서 내년에 완전임무수행능력 검증을 마쳐서 2022년에 전작권을 환수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에서 완전운용능력 검증에 필요한 평가팀을 한국에 파견할 수 없고, 따라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지만, 속내는 전작권 반환을 하지 않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2단계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으니 3단계 절차는 자동 연기되고, 결국 현 정부 임기 안에 전작권을 환수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안보 각료를 교체했지만 외교국방 라인은 그대로다. 국방부가 10일 내놓은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은 현 정부의 국방 정책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군사 주권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터다. 자주권 없는 민주 정권의 한계와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75주년 8‧15 경축사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문 대통령은 15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전쟁 위협을 항구적으로 해소하며 선열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광복의 토대를 마련하겠습니다. 남북이 공동조사와 착공식까지 진행한 철도 연결은 미래의 남북 협력을 대륙으로 확장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실천하면서 ‘평화와 공동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미국 정부의 일개 실무자가 한미워킹그룹에서 남북 정상들의 합의 이행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어기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강행되고 있다. 더구나 전작권 환수 능력까지도 미국에게 평가‧검증받겠다고 하는 정부가 ‘판문점 선언’을 입에 담고 ‘진정한 광복’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발언의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75주년이다. 그러나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는 ‘진정한 광복’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주독립은 미완의 과제이고 진정한 광복의 실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