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연장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코로나19가 급격히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서 온 나라가 불안하고 어수선하다. 이 와중에 슬그머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다시 연장되고 있다. 8월 24일, 지소미아를 종료시키려면 종료 의사를 통보해야 하는 마지막 시한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사가 온통 코로나19에 쏠려있는 사이에 지소미아 관련 소식은 가뭇없이 사라진 듯하다. 1년 전의 뜨거웠던 분위기와 비교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언론들이 지난 주말에 지소미아 관련 뉴스를 전했다. “1년마다 갱신되는 지소미아를 종료할 경우 일본에 통보해야 하는 기한인 24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현시점에선 새로운 움직임이 없다. 자동 갱신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지소미아 종료 통보 시한이 임박했으나 정작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와 관련하여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의사를 일본 정부에 통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보여준다.

정부는 24일이 지났다고 지소미아가 자동으로 1년 연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한국이 원할 경우 언제든지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설명이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부는 언제든지 지소미아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지난해 11월 22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킨 바 있다”며 “다시 말하지만 (한국 정부는) 특별한 시한을 정하지 않고 언제든지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소미아는 매년 11월 23일 자동 갱신되는데, 종료하려면 갱신 기한 90일 전까지 상대국에 서면 통보하게 돼 있다. 우리 정부는 작년 8월 협정 종료를 통보했다가 통보 효력을 정지했기 때문에 종료 통보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이런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려면 협정에 규정된 종료 절차에 따라 8월 24일까지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견해이다. 한일 양국의 해석이 상반되는데,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의 적용을 받는다. 비엔나 협약에서는 조약의 종료 및 시행정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4조 (조약규정 또는 당사국의 동의에 따른 조약의 종료 또는 조약으로부터의 탈퇴) 조약의 종료 또는 당사국의 탈퇴는 다음의 경우에 행하여질 수 있다. (a) 그 조약의 규정에 의거하는 경우, 또는 (b) 다른 체약국과 협의한 후에 언제든지 모든 당사국의 동의를 얻는 경우.’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지소미아를 종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소미아의 규정에 의거하는 방법이다. 지소미아의 발효, 개정, 기간 및 종료에 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이 협정은 1년간 유효하며, 그 후로는 어느 한 쪽 당사자가 다른 쪽 당사자에게 이 협정을 종료하려는 의사를 90일 전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서면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1년씩 연장된다.’(지소미아 제21조 3항) 이 규정에 따라 지소미아를 종료하려면 한국 정부가 8월 24일까지 외교경로를 통하여 종료 의사를 일본 정부에 서면 통보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듬해 11월 23일 0시까지 지소미아가 자동적으로 1년 연장된다.

지소미아를 종료하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협의한 후에 일본 정부의 동의를 얻는 경우이다. 만일 일본 정부가 동의해 주기만 한다면 ‘언제든지(any time)’ 종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소미아의 종료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현실적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의거하면, 우리 정부가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고 잘못됐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동의를 얻는 경우에 언제든지 종료시킬 수 있다”라고 수정해야 맞다. 거듭 지적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에 동의할 리 없으므로 ‘언제든지 종료시킬 수 있다’는 말은 주관적 희망사항에 불과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거짓말인 셈이다.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지소미아를 종료시키려고 한다면, 8월 24일에 종료 의사를 일본 정부에 서면 통보하면 된다. 그런데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위해선 일본에 종료 의사를 다시 통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작년 11월 22일 언제든 지소미아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한 바 있다”면서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종료 가능하다”고 답했다. 외교 당국자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관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태연하게 이런 답변을 늘어놓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돌아보면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일본 정부의 태도나 수출 규제 조치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일본 측과의 협의는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고, 이에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재개했다. 정부는 “지소미아는 언제든지 종료 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협정을 종료하고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중단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아베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신뢰가 없다’는 이유를 댔었다. 그렇게 신뢰가 없다면 그보다 더 강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지소미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는 아베 정부와의 군사 협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안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일본은 사실상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난 8월 4일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북측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할 경우에 한국의 양해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어째서 한국의 양해가 필요한 겁니까? 우리나라 영토를 방위하는 일에.”라고 답변했다. 일본이 한국의 사전 양해 없이 북측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공식 언급한 것이다. 지소미아로 한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대북 미사일 조기경보는 일본이 대북 선제공격을 위해 보유하려는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된다.

지소미아는 애당초 체결되지 말았어야 할 협정이다. 지소미아는 식민지 침략의 가해자 일본과의 군사 협정이며 향후 한일 군수지원협정으로 이어져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가속화할 지렛대이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때에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다시 연장하는 것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협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고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동북아의 냉전 구조를 고착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박근혜 정권이 남긴 ‘친일적폐’ 협정이다. 즉각 폐기해야 마땅하다. (2020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