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백서와 흑서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세가 전국 곳곳으로 번져 나가면서 2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월 14일(103명)부터 신규 확진자가 계속 세 자릿수를 기록했고, 27일에는 441명까지 증가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400명대로 늘어난 건 3월 7일(483명) 이후 5개월 만이다.

서울시는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를 ‘천만 시민 멈춤 주간’으로 정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된 데 따른 조치다.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제과점은 오후 9시까지만 정상영업을 한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는 포장이나 배달만 된다. 프렌차이즈형 커피전문점은 영업시간과 관계없이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헬스장과 당구장, 탁구장, 골프연습장, 필라테스 등 실내체육시설은 1주일 간 아예 문을 닫는다. 서울시는 30일 0시부터 다음달 6일 24시까지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집합금지를 결정했다. 수도권 소재 모든 학원은 1주일 간 10인 이상 대면수업이 금지되고 비대면 수업만 허용된다. 독서실과 스터디카페에 대해서도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이미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소상공인 카드 결제 정보를 관리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8월 셋째 주 서울시 소상공인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7% 감소했다. 8월 둘째 주 6.9% 감소보다 3배 이상 추락한 수치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확산세가 시작되던 2월 마지막 주(2/24∼3/1) 25.3% 감소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당장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1주일은 단지 멈춤이 아니다. 힘겨운 고난의 연장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를 꺾지 못해 3단계 조치가 불가피한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서울 시민들도 1주일은 일상을 포기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불편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나라가 비상한 상황으로 긴장하고 있는 때에 난데없이 ‘조국 사태’가 재현되고 있다.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가 동시에 출간돼 출판가에서 때 아닌 흑백 논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달 5일 출간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조국백서추진위원회 지음, 오마이북 펴냄)과 25일에 발행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진중권 등 5인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가 각각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로 불리며 맞붙었다.

기억하듯이, ‘조국 사태’는 지난해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촉발되어 10월 14일 장관 사퇴에 이르기까지 서초동의 ‘조국 수호’와 광화문의 ‘조국 사퇴’로 편이 갈려서 치열하게 전개됐던 대결이다. 나는 이미 지난해 칼럼들을 통해 조국 사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집권 3년차 증후군>(9월 2일), <검찰 개혁에 절호의 기회>(9월 9일), <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9월 30일), <흑백 논리의 이분법>(10월 14일) 참조.)

조국 백서에 대해 (길게 쓰자면 끝도 없겠지만)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먼저, 이 책의 1부 총론에 실린 전우용의 <조국,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가운데서 몇 대목을 인용한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논문 제1저자’가 되는 과정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학생의 ‘스펙’에 작용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제의 핵심은 학부모와 학생 개개인의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라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매개로 맺어지는 연줄에 있었다.”(31쪽)

“자녀 입시와 관련한 이 사건은 조국이 평소 지향해온 ‘가치’와 비교하면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지만,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32쪽)

“조국 후보자 딸의 입시 문제와 관련해 언론매체들은 불공평과 불공정 모두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불공평한 상황은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와 입시제도가 만든 것이다. … 이른바 ‘최상급 스펙’을 얻기 위한 경쟁이 불공평한 구조 위에서 진행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경쟁 과정 자체가 불공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35쪽)

조국 ‘빠’의 도덕 불감증이 이 정도라니, 가히 충격적이다. 조국을 위한 변명이랍시고 늘어놓는 궤변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조국 자신이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고,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하다.”라고 공개 사과했던 것은 속임수였단 말인가.

조국 흑서에 대해선 언급할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단언한다. 필자의 한 사람인 서민 교수는 ‘사회기생충 감별사’를 자처하면서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다. “조국은 앞뒤가 다른 파렴치한 기생충이다. 말라리아라고 본다. 말라리아는 비열하다. 몸에 들어오면 간에 숨어 힘을 기르다 잽싸게 나와 (몸을) 때려 부순다. 그러다 상대가 뭐라 하면 숨었다 (조용해지면) 다시 나타난다. 백신도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할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왜 말라리아를 꼭 박멸해야 하는 6대 질환 중 하나로 뽑았겠는가. 너무 비열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조 전 장관은) 말라리아와 동급이다.”(주간동아 인터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도 갖추지 못한 자의 추악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면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입소자에 대한 면회도 9월 6일까지 금지됐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급기야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채 요양시설에서 혼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는 생명이 위급해도 가족 면회가 어렵고 사망하면 곧바로 화장된다. 코로나19 사망자 300여명 가운데 70대 이상 고령자가 80%가량을 차지한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 2~3월 대구·경북 지역 유행 당시를 제외하고는 일일 사망자가 1명 발생하거나 없었다. 그러나 28일 3명에 이어 29일에는 5명이 사망했으며, 30일에도 2명 등 하루에도 여러 명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산소 치료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위중증 환자도 70명으로 늘었다. 2주 전인 지난 15일(14명)보다 5배나 증가한 수치다.

조국 백서건 흑서건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 엄중한 코로나19 시국에도 (조국 백서건 흑서건) 글쓴이들은 하나같이 먹고 사는 데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민심과 민생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흑백 논리의 이분법으로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쌈질을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고,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2020년 8월 31일)